최근 불륜을 저지른 공무원들이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사건들이 잇따르며 세간의 주목을 샀다. 불륜이 한국 사회에서 부도덕하고 부적절한 행위로 여겨진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으나 이로 인해 파면에 이르는 징계까지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징계의 합리성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해당 불륜 행위가 공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기북부경찰청 산하의 한 경찰서에서는 최근 A(33) 경찰관과 B(28) 경찰관에 대한 감찰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같은 근무지에서 불륜 관계를 맺으며 근무일지를 조작해 쉬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동료들에게 불륜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온라인 게임 채팅으로 연락을 했다는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공무원들이 불륜으로 인해 감찰 및 징계 절차를 거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월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전북의 한 초교에서 각각 기혼과 미혼 상태인 두 교사가 교내에서 애정 행각을 벌였다는 폭로 글이 올라와 파문이 일었다. 전북교육청의 감사 결과 청원의 내용은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확인돼 이들에게 경징계 조치가 취해졌다. 지난 2월에는 경북 지역의 두 경찰관이 장기간 불륜 관계를 지속하며 근무시간에도 부적절한 행동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나 파면됐다.
공무원의 불륜이 징계 대상이 되는 근거는 국가공무원법이다. 국가공무원법에는 ‘공무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품위가 손상되는 행위를 하면 안 되며 이를 위반할 시 징계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 조항이 공무원이 지닌 사생활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문제 제기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공무원에게는 직무와 관련 없이 지켜야 하는 품위가 있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다. 헌재는 지난 2016년 한 경찰 공무원이 해당 조항의 불명확성 등을 문제 삼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공직사회와 사법부는 공무원의 불륜도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으나 이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엄경천 법무법인 가족 변호사는 “간통을 더 이상 형사 처벌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배상 청구까지 인정되는 행위인 점을 고려하면, 공무원의 불륜은 공무 수행에 대한 국민 일반의 신뢰를 저해할 위험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불륜을 품위 유지 위반 사유로 보는 것은 적절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재혁 법무법인 에이스 소청전담 변호사는 “공무원이 객관적인 도의 규범을 준수해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불륜이 ‘품위 손상 행위’인지는 의문”이라며 “징계위원들의 기준을 보면 불륜을 비롯한 사생활이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를 따지기보다는, 사생활로 입방아에 오르면 처벌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결국 합리적인 징계를 위해서는 불륜 행위의 직무관련성을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홍관 산성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사실상 부부 관계가 파탄난 상황에서 불륜을 저질렀다면 이러한 사정도 참작을 해야 한다”며 “다만 불륜 행위가 사적인 영역을 넘어서서 공무에 영향을 미쳤다면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징계의 적절성을 따질 때 불륜 행위가 직무에 영향을 미친 정도를 따지는 판결들도 나오는 추세다. 지난 2019년 서울행정법원은 동료와 불륜을 저질러 해임 처분을 받은 경찰관이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경찰관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부적절한 관계에도 업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아 공직 기강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며 해임 징계는 지나치게 무겁다고 판단했다.
불륜으로 파면당한 청와대 경호원이 2020년 제기한 불복소송에서도 서울고등법원은 “원고의 비위 행위가 사적 영역을 벗어나 업무 수행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만한 자료는 없다”며 “파면 처분은 과중한 징계조치”라고 판시했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무원에 대한 징계는 형사처벌 여부와는 별개로 판단할 수밖에 없고 사회 상규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도 힘들다”며 “사회가 변하며 간통죄가 위헌 판결을 받았듯 불륜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면 이로 인한 징계도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 박홍용 기자 prodig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